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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야기

소통의 중요성


 # 어제, 부장님이 내게 건네준 한장의 설문지. 
 깨알같은 글씨로 <PD는 어떻게 되나요>. <PD가 되기위해 갖춰야할 자질은 뭔가요?> 등의 질문에서 <공주남의 자색치마 역할한 여자분은 다시 나오나요>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적혀있는 종이를 건네 받았다.   
 중학교 방송반이듯.. 학생들이 질문해 놓은 작은 질문지를 받고 생각없이, 너무도 사무적으로 적어내려가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시간, 연출자의 자리를 떠나 제작 프로듀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생각이 변화된 PD의 자질은 무엇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요 몇년동안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을 내게 던지기 시작했다.  이 작은A4 용지 하나가 수 년동안 현장에서 돌아가는 여러가지 상황으로 내 페이스를 잃어갈 무렵,  나를 잠시 돌아보게 한다. 


소통의 중요성 
 
# 공주의 남자를 제작하면서, 연출자가 아닌 프로듀서로서 이전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통이다.  100여명이 넘는 스탭과 배우들이 한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것은 말대로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다. 때때로 서로에게 아쉬울 때도 있고, 말은 못하지만 속상한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이번 여름은 계속되는 장마비로 현장에서 몇 시간씩 대기하기 일쑤인 상황이 참 많았다. 이럴 때 현장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조금씩 균열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끔은 큰 소리도 나오게 되고....   
 한 사람, 한 파트의 실수가 발생해도 모든 스탭들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실 촬영현장은 보이지 않는 나름의 긴장감이 존재한다. 눈빛만 봐도 몸짓만 봐도 그날 서로의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각자 분야의 베테랑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업무상에 큰 문제나 이견이 발생하는 것이 아무래도 적은 편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생방상황이 되면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되면서 작은 일에도 서로에 대한 아쉬움, 쉽게 말해 <탓>을 하게 되는게 현장의 생리이다. <탓>은 왜 생길까...그건  바로 소통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 히딩크가 2002년 월드컵 감독을 맡았을 때, 선후배간의 규율이 엄격했던 대표팀에서 선배, 형 등의 존칭을 없앴던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대표팀 막내인 이천수가 대선배인 홍명보를 부를 때도 '명보'라고 부르고, 선배는 선배대로 후배는 후배대로 모여, 소위 짬밥순서대로 식사하던 방식도 모두 타파하고, 선후배를 식사자리에서 섞어놓아 식사자리에서부터 커뮤니케이션의 통로를 만들어낸 것은 히딩크가 누구보다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소통하지 않던 선후배가 상대팀 공격수를 막는데 '저기요~ 선배님, 호나우두 가요' 하다가 골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드라마 제작현장에서도 소통은 너무도 중요하다. 현장 스탭간의 소통, 내부스탭과 외부스탭간의 소통, 배우와 감독, 작가와의 소통 등 드라마 제작 현장은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필요한 곳이다.  각자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뭉쳐서 일하는 공동체에서 소통의 부재에 따른 작은 틈은 큰 구멍을 만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제작현장에서 이렇게 소통이 원활하지 않음을 감지했을 때 프로듀서는 각각의 여러 파트들간의 소통의 통로 역할을 해야 한다. 마치 휴대폰과 전원을 연결해주는 충전커넥터처럼 말이다. 커넥터는 완전 충전되어있을 때에는 그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방전이 되어가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  프로듀서는  현장에서 발생되는 자질구레한 일(그러나 현장에서는 너무도 중요한)부터 상대프로그램 분석, 마케팅 전략 수립, 적재적소에 효과적인 인력을 투입하는 것까지 모든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같은 곳을 보고 나갈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본도 볼 줄 알아야 하고, 조명도, 장비의 쓰임새도, 감독과 씬에 대해 앵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편집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호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조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 많은 드라마, (비단 드라마 뿐만이 아니다) 중에 문제가 생기는 드라마들의 근원에는 항상 소통의 부재가 존재한다. 배우와 감독간의 소통의 부재, 스탭과 스탭간의 소통의 부재, 위 사람과 아랫 사람간의 소통의 부재가 쌓이고 쌓여 결국은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된다.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인지하고 예방하려면, 프로듀서가 현장과, 스탭과, 연기자와 다양한 교감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소통능력은 도덕성과 더불어 프로듀서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과연 나는 과연 소통을 잘하고 있는가 자문해본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은 과연 소통에 그 중심을 두고 있는가.. 이 프로그램의 모든 스탭들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는가...  중학교 학생들이 던진 몇 마디 질문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 드라마를 통해  만난 여러 스탭들, 배우들이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존재들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돌아보게 할 만큼....